좋은 생각·바른 행동·큰 사람
이곳은 고대 삼국시대에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고구려 와 백제가 성을 쌓은 곳이라고 함. 그래서 그 성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성저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함. 지금은 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나, 조선 중종 때에 보면 사포면의 들판 가운데에 오래된 토성의 남은 터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 조선 중기까지만 하더라도 성의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 같음. 신도시 이전의 성저리 성터는 마을의 작은 언덕을 이루며 2m의 높이로 짜여져 있었으나, 신도시 개발 로 사라졌음. 신도시 이전의 성저리의 행정구역은 송포면 대화 4리로 8개 대화리 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했던 마을이며, 1989년 통계로 이 마을에는 175가구 651명의 주민이 살았다고 함.
교표의 의미는 초록색은 성저마을, 주황색 톱니모양은 성터, 파란색 바탕은 한강을 포함한 바다. 노란색의 두레박은 성저 초등학교 각 학생들의 능력을 발휘하여 큰 꿈을 이루어 세계를 향해 나아감을 표현함.
(※ 두레박을 뜻하는 상징물이 본관 건물 상단에 있음)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수로 높이 30m, 둘레 6m까지 자람. 껍질은 검붉은 비늘 모양이고, 꽃은 늦봄에 피며 다음 해 가을에 구과를 맺어 바람에 의해 씨앗을 퍼트림. 우리 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상황 식물로 용도가 다양하고 예부터 선비의 굳은 절개를 상징하고, 우리 민족의 기상을 나타내는 나무로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였음.
장미과의 낙엽관목으로 높이 가 2-3m까지 자라고 가지 와 가시가 많으며, 5-6월에 여러 빛깔의 고운 꽃이 피고 종류가 다양하여 정원과 화단에 많이 심음. 특히 고양시는 우리 나라에서 장미를 가장 많이 가꾸고 외국에 수출하여 많은 외화 획득을 하는 중요한 꽃으로 고양시의 시화이기도 하며,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였음.
고양시는 남북통일의 전초 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건설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북을 잇고 있는 자유로와 통일로의 주변에 위치 하여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이루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길 바라는 뜻에서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교조로 결정하였음.